솔직히 말하자면 — 거창한 제목을 달았지마는 — 나는 전기차,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등의 신기술이 접목된 ‘새 시대’의 자동차를 좋아하는 편이다. 특유의 미래적인 외관 뿐 아니라 그냥 그 기술 자체가 주는 ‘새로운’ 혹은 ‘미래적인’ 느낌을 매우 좋아하는 것이다. 분명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는 (혹은 모두에게?) 한심한 허세로 보일 수 있겠지만, 스타벅스 컵을 들고 스마트폰으로 전기차의 시동을 걸어 여유롭게 시내 주행을 하며 생산적인 나날을 보내며 사는 모습, 그 자체로도 이미 몇 년 쯤 앞서가는 사람의 멋진 모습 같지 않은가?

그렇지만 나는 내연기관의 마력 또한 몹시 좋아하는 사람이다. ‘이니셜 D’로 대변되는 80~90년대의 느낌 뿐 아니라 ‘50~60년대의 그 미국적인 자존심이 한껏 느껴지는 캐딜락 엘도라도의 테일핀, 닷지 바이퍼, 쉐비 카마로, 포드 머스탱의 전성기 시절을 (비록 그 시절을 살아보지는 못했지만) 동경한다. 굳이 ‘마초적’이라느니 ‘상남자’스럽다느니 하는 성별구분적 표현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이런 썩어빠진 남녀양분식 표현은 애초에 쓸모없다) 남녀노소 누구나 ‘멋진’ 차를 타고다녔던 그 시절을 60여 년이 지난 지금에야 동경한다.

그러나 으레 그렇듯이, 고성능 슈퍼차저 엔진과 맹렬한 배기음, 크롬 장식의 화려함은 구시대의 유산 혹은 구시대의 비효율적인 쓰레기, 혹은 낭비적인 허세 쯤으로 치부되고 만다. 그리고 그렇게 퇴물이 되어 세계 자동차 역사의 한 부분으로 묻히게 된다. 그리고 그 자리는 실속과 가성비를 내세운 일본차와 한국차의 진격 앞에 정말로 한 때의 영광 쯤 되는 취급을 받으며 대체된다. 그러한 일련의 애처로운 변화는 결국 프리우스 같은 기괴한 (경제적 내지는 효율적이라고들 하더라) 같은 자동차들이 차지하게 된다. 고성능의 영역이 완전히 죽어버린 것은 아니지만, 일부 돈 많고 생각없는 부자들의 사치품 쯤 되는 부정적 인식에 얽매이게 된다. 심지어 자동차 메이커들도 고성능 자동차 모델들에 대한 홍보와 판매에 굉장히 소극적이게 되었다.

시대가 변하면서, 사람들은 자동차의 본연의 의미인 ‘달리는 것’에 대해 소극적이어졌다. 사람들은 이제 자동차를 구매할 때 이 모델의 엔진이 8기통인지 12기통인지, 휠은 알루미늄 휠인지 합금 휠인지, 내부 좌석이 소파처럼 푹신해서 어느날 밤 카섹스를 하기에 좋은지 아니면 사무실 의자처럼 단단해서 운전에 집중하기 좋은지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연비와 이산화탄소 배출량, 차체 무게 같은 것들에 더 신경쓴다. 성능은 이제 중요치 않다. 운전하기에 편하고, 같은 기름을 부어도 더 멀리 더 오래 달리는 차를 원한다.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진지하게 모두가 미래에 대해 걱정해야 할 지점에 서 있는 것이 사실이니까.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성능의 그 ‘멋짐’이 묻혀져가는 이 흐름은 아쉽다. 종국에 고성능 자동차들은 점점 더 도태되고 결국 멸종되어버릴 것이다. 영화 <매드 맥스>에서처럼 더 이상 지구를 걱정할 필요도 없는 비참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시대가 도래하지 않는 이상 (8기통을 외치며 천국 가기를 소망하는 그런 세상은 나도 싫다) 고성능 자동차들은 ‘그런 때가 있었다고 한다’ 하는 정도로 언급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안타깝지만, 이것은 나와 같은 소수파의 의견으로는 바꿀 수 없는 이 세상의 거대한 흐름이다. 어차피 없어질 운명이라면, 그 ‘멋짐’을 더 많은 사람들이 동경하고 추억했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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